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지난주 한국출장중 저녁 즈음 종로에 갈일이 있었는데, 눈 내리는 도심과 구세군 종소리 그리고 분주한 사람들… 역시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서울이지 싶었다. 그래도 오늘 아침에 San Francisco 회사 건물 1층 로비에서 회사관리회사의 직원들과 자녀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모여서 캐롤과 공연을 했다. 이제는 Merry Christmas라는 표현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점점 사라지고 있으니, 미국에서 캐롤을 길거리에서 듣는 일도 얼마남지 않은 듯하다.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다보니, 최근 한국에서 다시 살짝 이슈화된 종교인 과세 문제가 생각이 났다. 기독교계 일부의 반발로 다시 조용해지기는 했는데,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문제인듯 하다. 미국에서도 교회는 면세기관 (tax-exempted)이고 종교인도 몇몇 보고사항과 약간의 준조세성격의 세금을 내는 정도로, 일반인에 비해서는 세금부담이 확실히 적다. 하지만 종교인이 ‘보고 (filing)’를 한다는 점에서 한국 종교인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큰 차이는 교회를 포함한 종교기관의 면세혜택 기준일 것이다.
미국에서 교회는 자동적으로 (즉, 정부기관의 인증 없이도) 면세기관 혜택을 받지만, 이 혜택을 받기 위한 여러가지 조항이 있는데, 몇가지는 한국교회에 시사점이 있다.
– 교회의 본질적 활동중에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서, 설교중에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지원이 대표적이다. ‘장로 대통령’을 말하는 순간, 그 교회의 면세 혜택은 사라진다. 한국의 많은 대형교회는 미국세법기준으로 보면, 이미 세법상 종교기관이 아니다.
– 특정 후보자를 초청해서 강연/설교를 하면 안된다. 부르려면 다 불러야 한다. 대선후보의 특별강연이 대표적이다. 장로님 후보가 나와서 교회 예배순서 중에 나라를 걱정하는 강연을 하면, 역시 교회의 면세 혜택은 사라진다.
– 목사를 포함한 교회 내부자에게 과도한 보상이나 공정가격이하의 내부자 거래를 하면 안된다. 한국교회의 경우 종종 재정이 불투명하니, 과도한 보상을 했는지 알수도 없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몇몇은 행색과 행태를 보면 과도하게 받을 법한 모습이다.
미국에서 교회는 교회재정에 대한 자료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보관할 의무를 가지고 있고, 세무당국은 교회를 포함한 종교단체가 면세혜택을 벗어나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정황이 있다면, 교회의 재정을 감사 (Audit)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물론 권한을 가졌다고해서 실제 세무당국이 감사를 종종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미국에서도 한국의 대형교회 같은 정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곳도 있다. 여하간 미국에서 교회는 세법상으로 명확한 룰을 가지고는 있다.
조금 벗어나는 내용이기는 한데, 방송이나 인터넷을 보면, 성경에서 예수가 세금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찾는 구절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성경을 인용한다. 즉, “세금 낼것은 내고, 종교활동은 하라”라는 취지로 해석하고 있다. 예수를 찾아와 세금을 내야 하냐고 물은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이다. 한국으로 치면 새누리당과 통진당이 손잡고 와서 물어 본 것이다. 서로 앙숙인 두 세력이 공통의 적인 예수를 궁지에 몰기 위한 질문으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옮으냐’고 물어본 것이다. 세금을 내라고 하면, 예수를 메시아로 알던 유대 사람들이 ‘종교적’ 관점에서 등을 돌릴 것이고 (바리새인이 원하는 것),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정치적으로 예수를 위험하게 생각하던 통치세력이 예수를 명확한 반체제 인사로 잡아갈 수 있는 구실을 만드는 것 (헤롯당이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외통수 질문이기 때문에, 예수가 “세금 낼 것은 내라”라는 해석은 잘못된 해석일 가능성이 높다.
예수의 답변은 “지금 나라의 경제를 얘기하는데 파리가 앉았다”는 답변이다 (대신증권 분은 요즘 근황이 어떻게 되시는지…최고로 웃긴 상황이었던 듯). 즉, “하나님 나라를 얘기하는 데 세금이 왠말이냐” 정도라고 보면 될 듯하다. 여하간, 한국교회와 종교인이 재정적으로 투명해졌으면 하고, 이를 뒷바침할 수 있는 합리적인 법적인 장치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교회가 진정으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성경을 따랐으면 하는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