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토토가를 몇번을 돌려 봤다. 그냥 재밌게 볼것이라고는 생각했는데, 나 역시 뭔가 짠한 느낌이 남는다는 것에 신기했다. X세대라는 이름으로, 나라가 어느 정도 번영의 단계로 진입하면서 출생한 새로운 세대. 당시만해도 영원히 신세대일줄 알았는데, 어느순간 은퇴를 슬슬 걱정하고, 자식의 대학 학자금을 걱정하고, 그때까지 직장을 어떻게 잘 다닐 수 있을지 걱정하는 나이와 환경이 되었다.
91년은 아마도 대학에서 민주화의 거대담론이 다루어지던 마지막 시대였을 듯 하다. 당시 재수 시절에 연대앞 신촌로터리 나이트클럽을 다니다가, 연대앞에서 대형 시위로 인해, 나이트클럽에서 도망나오듯이 나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아마도 다음해인 92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변화의 시기였던 듯 하다.
오랜 군사정권시절에서 최초로 소위 문민정부가 탄생되어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퇴색되었고, 실질적인 여행자유화 개시로 우리나라 밖의 세계에 대해 알기 시작하여 대학생들은 의례 어학연수를 떠나기 시작했고, 중국과의 수교로 그동안 북괴와 동급으로 알았던 중공이라는 이름이 중국으로 대체되었고, 서태지의 출현으로 기존 음악의 평가틀이 깨어지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정치, 외교, 문화, 사회에 걸친 총체적 변혁의 시기였었다.
그리고 이 변혁의 시기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듯이 최고의 문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아마도 우리나라의 두번째로 큰 변화를 가져온 98년 경제위기까지 최고의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92년에서 98년 사이가 한국 대중문화의 최고 시기였고, 우연히 내가 대학을 다녔던 시기와 일치한다고 스스로 만족해 보았다.
물론 나의 대학생활은 이런 문화적 황금기의 변두리에서 의미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명문대생이라는 천박한 자부심과, 반민주 투쟁을 제외하고는 앞으로의 세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학교 분위기, 학교에서 보다는 당구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주변 사람들을 이런 저런 모습으로 상처를 주며 보낸 가장 안타까운 시절이었던 듯 하다.
회색의 시절인 나의 90년대를 피상적이나마 아름답게 윤색할 수 있는 것이, 길 거리에서 또 리어커에서 들리던 토토가에 나온 음악인 듯 하다. 아름답지도 않은 과거이지만, 아름다웠다는 가상현실을 만들어주는 배경인 듯 하다. 그것이 음악이 힘인 듯 하다. 지누션과 함께면 나도 챔피언이었다. 그리고 이 곡을 듣는 지금 다시 챔피언이다.